06. 커다란 집은 늘 나에겐 어두웠다. 공허하고 텅 빈 로비, 거실의 유리로 된 샹들리에는 몇 년 전 부터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인기척도 없이 서늘하게 내려앉은 집의 공기는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을 안보이게 했다. 정국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새까매지는 시야에 눈을 질끈 감았다. 곧 현관의 자동으로 켜지던 불도 한순간에 꺼졌다. 고요함과 칠흑 같은 어둠이 정...
05. 연극은 딱 예상한데로 재미없었다. 전정국은 극장을 나와 하품을 해댔다. 오늘 우린 연인처럼 거리를 나다녔다. 데이트라도 하는 것처럼 같이 연극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길거리에서 하는 버스킹을 듣고, 즐길 대로 즐기곤 집에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그래 평소 같았으면 편하고 재밌기만 했을 텐데 전정국이 날 좋아한다는 걸 한번 의식하기 시작하니 도...
04 어느 때처럼 북적이는 급식 실. 익숙한 듯 정국, 지민, 태형 세 사람은 나란히 앉아 같이 급식을 먹었다. 오늘의 밥은 태형이 싫어하는 콩밥이었고, 아니나 다를까 태형은 자리에 앉자마자 열심히 콩을 골라냈다. 애도 아니고 그냥 먹지 저걸 생선 가시 바르듯 골라내고 앉았다. 지민은 태형의 모습을 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야 박지민” “왜” “탕수육 안 ...
03. “자고갈래” “뭐?” “늦었잖아, 자고가게 해줘” 아까는 괜찮다며 땍땍거리더니, 지민의 집에 오자 정국은 정말 아픈 건지 침대에서 이불을 폭 뒤집어쓰고 누워 아이처럼 칭얼거렸다. “너 아버지는? 걱정하실 거 아니야 빨리 집에가” “그 인간 내 걱정 안 해” “전정국” “아, 안한다고” “하… 알았어.” 지민은 정국의 겨드랑이에서 체온계를 빼냈다. 3...
02. “야 김태형 그거 가져와라” “네가 먼저 시작했잖아” 우와악! 소리를 내며 복도를 미치도록 뛰어다니는 태형과 지민은 저 나름의 술래잡기 중이었다. 사건의 발달은 지루했던 수업시간을 견디곤 쉬는 시간에 꽤 혈기가 돌았던 지민이 태형의 슬리퍼를 뺏어들어 도망갔던 게 시작이었다. 장난이 과열돼 지민은 무심코 슬리퍼를 문밖으로 던져버렸고, 우연으로 문밖이 ...
01. 민윤기는 어릴 때부터 천재였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을 땐 그랬다. 그런데 왜 지금 선생으로 내 눈앞에 나타났는지 모르겠다. 외국에 내로라하는 기업들에서 수십, 혹은 수백 통의 러브콜이 쏟아 졌을 텐데, 심지어 그 좋은 머리로 주식을 하니 지금 주식만으로 번 돈이 빌딩 한 채 일 것이다. 아무 일도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으면서 왜 고생을 사서하는 ...
00. “야 전정국 나 휴지” “뒤에 있잖아” “빨리, 콧물 떨어진다고” 좆같은 봄. 지금 내 앞에 쌓여있는 휴지만 태산이다. 드디어 코에 휴지를 종일 꽂고 있어야 될 계절이 온 거다. 지민은 곧 휴지를 돌돌 말아 코에 끼웠다. 정국은 그런 지민을 보며 실컷 비웃다가 그가 정색하는 표정을 보니 조금은 안쓰러워 입 꼬리를 내렸다. “나 지금 어때” “뭘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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