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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프로메모리아 01

기억을 위하여



01.




민윤기는 어릴 때부터 천재였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을 땐 그랬다. 그런데 왜 지금 선생으로 내 눈앞에 나타났는지 모르겠다. 외국에 내로라하는 기업들에서 수십, 혹은 수백 통의 러브콜이 쏟아 졌을 텐데, 심지어 그 좋은 머리로 주식을 하니 지금 주식만으로 번 돈이 빌딩 한 채 일 것이다. 아무 일도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으면서 왜 고생을 사서하는 걸까. 내 머리론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긴, 중학교 때 민윤기가 내 과외를 해줄 때도 어이가 없긴 했다. 용돈이 부족했나? 그건 당연히 아닐 거고 그의 성격에 남을 가르친다는 게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내 눈앞에 학습지를 펼쳐놓고 펜을 돌리고 있는 관경이란, 생각 만해도 머리가 다시 띵해진다. 그가 나한테 치는 대사는 보통 ‘집중해 인마, 너 머리에 뭔 문제 있냐? 다시 풀어, 다시. 다시. 다시’ 의 반복이었다.

그래, 내가 자기의 머리로는 이해가 안됐겠지. 나는 그가 날 세상 한심하게 쳐다보는 눈빛이 내 머리 탓 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건 다 저 인간성이라곤 없고 세상이 다 지 머리 같은 줄 아는, 공부는 잘하면서 싹바가지라곤 어디로 배워먹은 건지 모르겠는 민윤기 탓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원래 평소에 엄마 말은 잘 듣지 않아 그때도 밥 먹으면서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그때 엄마가 ‘윤기가 교사가 꿈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윤기 엄마가 골치 아파 하는 것 같다’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래 그때 만해도 민윤기를 미워했다. 당연히 과외하기가 싫었고 날 죽일 듯이 쳐다보는 민윤기가 싫었으니까. 그런데 성적이 올랐고, 그에 대한 마음이 존경으로 바뀌기 시작하면서.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문제를 척척 풀어내는 모습이 멋있었고, 그 시니컬한 옆모습이 좋았고, 날 혼낼 때도 은근히 신경 쓰는 듯한 민윤기의 행동이 좋았다. 고양이 밥을 주면서 평소 보지 못했던 미소를 띠는 것도 멋있었고 잘생겼고, 생각해보면 그냥 다 좋았던 것 같다. 그렇게 열열이 좋아 했는데. 뭐 예상도 했었고 배짱도 있었지만 고백하고 차이니 모든 게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내 마음도 시간도 뭣도 모조리 사라지는 기분, 그냥 세상의 픽셀이 하나둘 어디론가 날아가곤 검은 곳에 나만 덩그러니 남겨진 느낌. 딱 그 느낌이었다.

고백 같은 거 괜히 했나,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보면 고백하고 차여도 후련해 하던데 왜 난 아니지.


“야 박지민”

“어?”

“무슨 생각 하냐”

“아 그래, 전정국 넌 알고 있었지?"

“뭘”

“윤기 형 이학교로 온 거”

“아, 그랬었나.”

“씹새야 네가 그러고도 친구야?”

“왜, 너 윤기 형 좋아하지 않았냐?”

“아니 싫어하는데 존나”


그래, 네가 뭘 알겠냐. 지민은 맛없는 급식에 계란찜만 입에 쑤시듯 넣었다. 아무래도 전정국은 내가 게이인 것도 모르고, 민윤기를 어떻게 좋아했는지도 모르고 고백한 것도 모르니까 저렇게 쉽게 말이 나오는 것도 이해한다. 이해하는데 억울한 마음에 혼자 속으로 화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다 먹지도 않았으면서 테이블에서 일어나는 전정국의 얼굴엔 꽤 급식에 대한 불만이 가득해 보인다.


“됐고 빨리 먹고 나와, 축구하게”

“아 뭔 비 오는데 축구야”


아무리 가랑비라지만, 이거는 나가서 한 10분만 뛰어도 분명히 젖는다. 빤쓰까진 아니지만 윗도리는 다 젖게 생겼다.





***





“22번이 나와서 풀어봐”


저거, 일부러 시킨 거 맞지? 우연히 내 번호를 불렀을 리가 없잖아. 지민은 터덜터덜 칠판 앞으로 나갔다. 모르면 어쩔 건데요 쌤. 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본능처럼 민윤기 앞에서는 오기가 생긴다. 내가 이걸 풀고 저 인간을 조금이라도 놀라게 만들고 싶다는 그런 오기. 민윤기는 평소처럼 흥미도 기력도 없는 표정을 하곤 교탁에 팔자 좋게 기대 있었다.


“너는 어디서 머리감고 왔냐? 왜 애가 다 젖었어.”

“비 맞아서 그래요 밖에서 축구해서”

“이 날씨에 잘도 노네.”

“말시키지 마요, 집중해야 되니까”


그래, 그렇게 해서 푼 결과는 처참했다. 나 같은 빡대가리가 수학 같은 걸 잘할 리가 없잖아. 산수도 힘든데. 민윤기는 내가 푼 풀이를 빗금을 쳐가면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틀렸는지 오목조목 해석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너무 얄미웠다.

아까 못 맞춘 문제가 너무 신경 쓰이고 자존심상해서 자리를 돌아가서도 한참을 다시 풀었다. 그래 내가 민윤기랑 이런 식으로 공부했다가 성적이 오른 거였어.

그리고 무시하기도 힘들 정도로 날 쳐다보는 김태형에 참다 참다가 하는 수 없이 옆을 돌아봤다.


“왜”

“너 윤기 쌤이랑 아는 사이지"

“어”

“어쩐지 첫날부터 이상했어! 무슨 사이야?”

“동네 아는 형이야”

“대박 신기하다. 그럼 시험문제도 막 알려주고 그러나?”

“그러겠냐”

“나 같으면 그러겠다!”

“바보냐 너?”

“아 왜”


김태형이 바보란 말에 조금 상처받은 듯 비죽거렸다. 매일 옆에서 하는 짓 보면 멍청한 것 같은데, 지우개로 도미노나 만들고 교과서는 안 들고 오고 교과서 들고 오면 베고 자고 그런 거 여러 번 본 것 같아서.


“너무하다 지민아.”

“아 맞아 김태형 너 어디사냐”

“나 한남동쪽”

“아, 머네.”

“왜?”

“같은 동네 살면 우산 좀 얻어 쓰려고 그랬지.”

“와, 나도 우산 없어”


어련하겠냐.

매일 전정국이랑 같이 집에 가는데 오늘은 전정국이 병원에 들려야 한다고 해서 같이 갈 수 없었다. 전정국은 우산 있던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은 때마침 비가오고 난 때마침 우산이 없고, 그래서 비를 맞고 가야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다.


“넌 우산 없이 어떻게 가려고?”

“방금 급한 일이 떠올라서, 그냥 맞으면서 뛰어가야겠다.”

“급한 일?”

“엉, 강아지 사료 주는 걸 깜빡하고 나왔어”

“그러네, 넌 좀 뛰어야겠다.”


맞잖아 너 멍청한 거. 곧 민윤기의 정말 성의라곤 발톱에 때만큼도 없는 간단한 종례를 끝으로 안절부절 하게 앉아있던 태형이 튀어나가듯 자리를 떴다.

하교인 만큼 아이들은 일사분란하게 흩어져 집으로 향했다. 지민은 급하게 윤기의 뒤를 따라가다가, 교무실로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곤 발걸음을 멈췄다.

교무실로 들어가 버리니 하고 싶은 말도 할 수 없고, 아는 채도 하기 곤란하잖아. 지민은 핸드폰을 꺼내 ‘민윤기’ 라고 딱딱하게 저장된 연락처로 급하게 문자를 두들겼다.

[형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에요? 일본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저랑 지금 장난쳐요? 왜 갑자기 우리 반 담임이 되어 있는 건데요 교무실에서 나와서 얘기 좀 해봐요] 내용은 대충 이렇게 보냈고, 그의 답을 교무실 앞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그가 나오길 바랐다. 하지만 온건 내용도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자하나였다.


[지금은 바쁘고,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학교 밖에서 만날 때 해]


그리고 또 하나


[그리고 네 성적 봤으니까 내일까지 학습계획서 써와 교무실로 와서 나한테 직접 제출해]


쓰벌 저건 인간도 아니다. 지민은 분노의 찬 발걸음으로 다시 교실로 올라왔다. 비가 멈추면 집에 갈 생각이었는데 좀 어리석었던 것 같다. 오늘 낮에 김태형에게 들은 바로는 전국적으로 오는 비라고 했고, 내일까지 내린다고 했으니. 정말 맞으면서 가는 수밖에 없나.

지민은 창밖을 바라봤다. 비가 와서 그런지 불은 켜져 있지만 어둑한 교실에, 아무도 없는 책상. 좀 으슬 거릴 정도로 추운날씨는 사람을 조금 외롭게 만들었다. 비가 오면 어릴 때는 꼭 우산을 들고 누군가 날 기다려줬던 것 같은데.

아, 궁상맞게 별생각을 다 한다. 괜히 비 오는데 창문은 열고 무슨 지랄이람. 지민은 자신 쪽으로 불어치는 비바람을 맞고, 비 냄새를 코에 한껏 들이마신 뒤 창문을 닫았다.


“뭐해”


지민은 뒤를 돌곤 화들짝 놀랐다. 벌써 가고 없을 줄 알았던 정국이 문틀에 기대곤 우산을 흔들어보였다. 지민은 눈앞에 있는 정국이 새삼 반가워 활짝 웃으며 축 쳐진 어깨위로 흘러내리던 가방을 고쳐 맸다.


“뭐야 병원 간다며!”

“몰라, 자고 일어나니까 아무도 없더라고”

“학교 끝난 지도 모르고 잔거야? 하긴 너 깨우는 게 보통일은 아니지”

“넌 뭐냐, 혹시나 해서 와봤더니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궁상은”

“아냐 지금 가려고 했어”

“비 맞고?”

“응”

“나있어서 좋지”

“응!”


높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지민의 모습엔 기분 좋은 설렘이 묻어있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정국의 입가에도 미소가 감돌았다. 야 우산은 네가 들어. 정국의 말에도 ‘좋아!’ 라고 신나게 말하곤 지민은 우산을 높게 들었다.

그리곤 갈 길을 걸었다. 우산 밖의 어깨가 축축하게 젖어나갔다. 정국은 우산을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고 우산을 잡고 휘청대는 지민이 재밌는지 낄낄거렸다. 언제부터 전정국이 나보다 커졌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전정국에 맞춰 우산을 높게 들고 있는 게 여간 자존심이 상하는 게 아니다. 어릴 땐 분명 쬐깐했던 것 같은데.

그리곤 얼마가지 않아 답답했는지 정국이 우산을 뺏어들었다.


“내가 들게”


어? 어. 정국이 우산을 들자 지민은 갈 곳을 잃은 손을 어정쩡하게 두다가 주머니로 내리꽂았다. 그러고 보니 요즘 전정국이 병원을 가는 횟수가 잦아진 것 같아 걱정이다. 아주머니 괜찮으신 건가? 요즘 많이 안 좋으시나? 물어보고 싶지만 많이 무거워진 전정국의 분위기에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너 근데 병원 가봐야 되는 거 아니야?”

“괜찮아 오늘은, 아버지가 간다고 해서”

“아 그렇구나. 그럼 오늘은 집에 바로가려고? 아님…”

“알바가야지, 석진이 형이 기다린다.”

“너도 참 부지런하게 산다.”


부지런한 전정국, 그 뒷면엔 여러 사연이 있겠지만 내가 아는 건 얼마 되지 않는다. 일단 전정국의 아버지는 항상 엄하고 손버릇이 좋지않았다. 그래서 전정국은 이따금 얼굴이며 몸에 멍자국을 들고와서는 '괜찮아' 만 남발했다. 나는 그게 싫어서 만나 보지도 않았지만 전정국의 아버지를 싫어하는 편이다. 자식을 그렇게 무식하게 패는 부모가 요즘 세상에 어딨어. 그리고 전정국도 그런 아버지를 매우 싫어했고,  아버지가 있는 집에도 들어가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학생이면서 아버지 돈으로 용돈받기가 싫어 항상 알바를 다녔고 돈만모이면 집도 나와야겠다는 태세였다. 더 많은 얘기를 듣고싶고, 힘들면 나누고 싶기도 하고 걱정되지만 이건 전정국이 나에게 말해줄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오늘도 아버지를 피하느라 병원에 가질 못하는 거겠지. 어렴풋이 예상했다.


“너 근데 언제 이렇게 컸냐”

“뭔데 새삼”

“아니 우리 초딩 때부터 봤잖아. 문득 문득 놀래 너 보다가”

“나도 놀래”

“왜 나도 좀 컸어?”

“네가 점점 예뻐 보여서”


갑자기 발을 멈춰 진지하게 말하는 전정국의 모습에 놀랐고, 저런 니글니글한 멘트를 칠 수 있다는 깡에 놀랐다. 와, 얘 언제부터 이렇게 됐지.


“미친놈이 뭐래 징그럽게”

“때릴 줄 알았는데 다행이다.”


동물병원에 도착한 정국은 지민에게 우산을 건넸다. 너 쓰고 가, 나는 석진이 형 차 타고가면 되니까. 지민은 기뻐 보이는 얼굴로 우산을 낚아채 손을 흔들었다. 알바 열심히 해. 지민의 말에 정국은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딸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동물병원에 들어섰을 때 정국은 바로 문 앞에 있는 사람을 보고 놀라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아 형, 왜 거기서 있어요.”

“비 오잖아, 나 오늘 차 안 가져왔는데”

“그놈의 우산 안 가져온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지”

“야 난 우산 아니야 차라고”

“지금은 우산만도 못 하잖아요”

“됐어 넌 빨리 청소나 시작해”

“형은 빨리 진료나 보죠.”


진이네 동물병원, 그게 정국이 알바 하는 곳의 이름이었다. 주된 업무는 청소와 정리. 그리고 동물들(주로애견)과 놀아주기 등등의 잡일이고, 가끔 수의사인 석진의 아재개그를 받아주거나, 말동무가 되어주기도 한다. 석진은 어릴 때부터 같은 동네에서 자랐던 형이었고, 화려하게 생긴 겉모습과 다르게 꽤나 엉뚱하고 유쾌한, 가끔은 아이 같기도 한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적지 않은 나이 차이에도 친구마냥 편할 수 있었다. 어릴 때는 그래도 형이라고 많이 챙겨주고 그랬던 것 같은데, 지금은 뭐… 아, 알바비가 나오니까 지금도 많이 챙겨주고 있는 건가.

어쨌든 옛날에 박지민이랑 나는 어디 누구한테 괴롭힘을 당하거나 그러면 김석진에게 쫄래쫄래 와서 혼내달라고 도움을 청하기도 했었다. 맨날 근처 농구장에서 공을 튀기고 있던 윤기 형한테는 무서워서 입도 뻥긋 못하다가, 꼭 어디서 촐랑거리면서 나다니는 김석진을 찾아서 일러다 받쳤다.

김석진은 그런 우리를 귀여워하면 서도, 그래봤자 어린애들인데 누굴 혼내러 갈 땐 꼭 윤기 형을 앞세우며 나왔다. 그러면 윤기형은 특유의 귀찮아하는 표정으로 석진이 형한테 ‘아 형 혼자가요 진짜, 귀찮게’ 라고 말하면서도 우리한테는 ‘어딨어 빨리 말해’ 라고 말하며 쥐도 새도 모르게 우리에게 돈을 뜯어간 애들을 처리하고 오기도 했다.

그래서 난 어릴 때부터 윤기 형은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김석진은 글쎄, 그저 친하고 편한 형. 그 정도였다.


“아가 너는 왜왔니”


정국은 케이지 문을 열어 기운 없어 보이는 자그마한 새끼 푸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 걔 장염이야, 너 뭐 간식 같은거 주면 안 된다.”

“알았어요~ 주인은 언제와요?”

“내일, 아 근데 너”

“…?”


무언가 할 말이 있는지 석진이 진료실에서 걸어 나와 정국의 앞에서 비장하게 팔짱을 끼곤 섰다. 정국은 무언가 싶어 그런 석진을 위아래로 흘겨봤다.


“뭔데요”

“너 오늘은 고백했냐?”


그놈의 고백, 내가 박지민을 좋아하는걸 알게 된 뒤로 하루에 한번 씩 물어본다. 김석진은 고백 그까짓 거 별거 아니라며 쓸데없는 조언을 늘어놓곤 그 뒤로 항상 나의 고백여부가 그렇게 궁금 한 건지 뭔지, 약올리는 건지 대체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는데. 하여튼 항상 물어본다.


“아뇨”


안할 거예요 그런 거. 그렇게 말은 하지만 두려웠다. 언젠가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커질 대로 커져서 감당하기 힘든 마음을 부여잡고 박지민 앞에 선다는 게 두려웠다.

상처주고 싶지 않았고, 잃고 싶지 않았다. 여태 그런 마음이 더 컸었는데. 솔직히 지금은 나도 잘 모르겠다. 박지민을 좋아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요즘은 그 일상이 버거웠다.


“모르겠어요 계속 좋아해도 되는 건지”


물론 좋아하는 걸 멈추는 게 더 말이 안 되는 소리긴 하지만.

단순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 자꾸만 저울질 하게 되니까, 나의 감정이 죄 같았기 때문에 내가 받을 상처가 큰지, 아니면 박지민이 받을 상처가 클지. 그런 암울한 이야기들 밖에 떠오르지 않아서, 그래서 그랬다.

자꾸만 내 멋대로, 이기적으로 굴게 되는 게 싫었다. 혼자 뭐하는 건데? 삽질만 주구장창 하니 곧 내 몸을 뉘일 구덩이 하나가 거뜬하게 만들어졌다.

그래. 난 내 무덤을 팠다.


“징그럽데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한말인걸 알면서도, 박지민을 죄인을 만들고 있었다. 내가 뭔데 대체, 그래 대가리가 크니 요즘은 딱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형, 나 진짜 어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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